20130519 日常

사람은 변화하는 것일까. 환경에 계속 버티는 것일까. 아직 내 안의 대답은 찾지 못했지만 어쨌든 여기에 다시 온 걸 보면 사람의 성향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닌 것 같다. 

많은 일이 있었다. 왜 여기에 보고를 해야겠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중얼대는 것이 어느새 오랜 습관이 됐다. 

일본의 회사에 다시 들어갔다. 2012년은 인생의 공백기가 됐다. 다시는 오지 않을 휴가지만 딱히 뭘 한 건 없다. 돌이켜보면 뭐하리..
한국인 최초채용인데다 합격한 것은 나 혼자니 꽤나 대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취업시장과 비교하면 훨씬 쉬워 보인다. 
한국에서 인문계 비상경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니, 차라리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 취업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일본 극우파의 헛소리를 들어가며, 가끔은 동기들과 알지도 못하는 정치 이야기를 하고, 술을 마시고, 배팅센터에 가고, 배드민턴도 치고, 농구도 하고, 평범하게 일하면서 살고 있다. 별일없이 산다. 학생 때 해볼 거 다 했으니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이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남들 하는 거 하면서 살기가 말이지.

그 잘난 현실로의 편입 가볍게 혹은 무겁게

일본 대기업 금융권의 한국 지사에 취직을 했다. 올해 상반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빨리 돼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이곳보다 더 괜찮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공존한다. 일단 들어오니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할테니, 일단은 여기서 만족해야겠지.

19학점을 들으면서 취직준비를 했고, 12월에야 그나마 구색을 갖춘 스펙을 만들어 제대로 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연말에 면접을 하나 보고 떨어지고, 두 번째 넣은 회사에 취직했다. 어렵다 어렵다 하는 취업이지만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만 제대로 할 줄 알면 의외로 쉽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2009년에 일본으로 가면서부터 내 고집으로 인생을 사는 법을 배웠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는것이 옳은 내 삶의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내 동기들처럼 영어공부나 열심히 하면서 좋게좋게 살았다면 과연 취직을 잘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스트레스만 받다가 평생 염세적으로 살아갔겠지. 

열정이라는 건, 최선을 다한다는 건 그만큼의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이어야 잘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찾아다녔고, 대학 생활 동안 후회없이 평생 남을 추억들을 간직할 수 있었다. 자랑 같은 이야기이지만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내가 추구하는 삶을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많았고, 그 댓가로 얻은 것들이니 나를 부러워할 것은 못 된다. 나는 부럽다는 단어를 정말 싫어한다. 부러워하지 말고 각자가 최선을 다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취업은 내가 열심히 살았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 삶이 사회적으로 처음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 결국 내가 추구하던 올바름은 맞는 생각이었다. 앞으로의 삶은 내가 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삶의 만족을 찾을 것인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삶이 펼쳐질 것이다.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어느정도 순응할 것인가. 그것들에 대한 해답을 천천히 찾아나가야 한다. 

인생의 중요한 굽이를 넘어갔다. 다음 단계도 그리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다. 점점 내가 원하는 것과 멀어지는 삶은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인지.

[wow]인생퇴갤 한 달 게임


작년 연말부터 시간이 갑자기 남아돌았다. 와우 한 달을 질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2월이 됐다. 다시 결제하기가 무서워서 일단 한 달로 끝냈다. 셧다운제니 뭐니 하는 건 다 개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뭐든지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나 같은 인간은 셧다운제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63렙부터 와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장가르 습지대, 테로카르 숲, 나그란드를 돌았다. 나그란드의 자연이 좋아 한동안 머물렀다. 68이 되고 노스렌드로 넘어갔다. 무작위 인던이 생겨 어렵지 않게 던전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80렙이 되고 빨리 만렙을 만들자는 생각에 노스렌드 영던을 얼마 가지 않은 것이 아쉽다. 80에서 82까지는 하이잘이 마음에 들어 하이잘의 모든 일반 퀘스트를 완료했다. 마지막은 NPC인 세나리우스, 말퓨리온과 함께 라그나로스를 잡는 파티퀘 같은 미션이었다. 울둠에서는 인디아나 존스와 함께 패러디의 세계에 빠졌다. 블리자드의 경지에 오른 퀘스트 메이킹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와우는 만렙부터가 시작이다. 전문기술을 올리고 점점 상위 던전에 나아갔다. 어느 정도 장비를 맞추자 결국은 레이드 컨텐츠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서버 막공으로 불의 땅도 도전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그저 막공을 모으길래 끼어서 간 공격대는 나같은 오랜만에 복귀한 사람에게 버거웠고, 민폐가 될 수밖에 없어 사람들에게 참 미안했다. 두 번째 막공에서는 운이 좋은지 라그나로스까지 볼 수 있었다. 잡지는 못했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첫 라그나로스 트라이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허접해서 쓴웃음만 난다. 딜은 당연히 하위권에, 잠행도적이라 패기있게 그림자 밟기를 써서 뒤로 돌아갔지만 용암에 빠져 떡실신당하고 겨우 생존기를 써서 올라오자 이번에는 설퍼라스 강타 한 대 맞고 즉사했다. 두번인가 세 번 들이대고 여기 내가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빠져나왔다. 아무리 막공이지만 공장이나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오랜만에 복귀한 와우지만 역시 계속 하는 건 무섭다. 덕분에 내 한 달이 사라졌다. 와우를 열심히 할수록 현실에는 소홀하게 된다. 와우를 안 한다고 딱히 별다를 것을 하는 건 아니지만서도. 일단 정지 상태이지만 또 복귀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옛날에 비해 많은 것들이 편리해졌다. 일반 퀘스트에서도 심심치 않게 레어템을 주고, 캐릭터 자체의 능력이 올라 몬스터도 빨리빨리 잡는다. 인던도 신청만 해놓으면 얼마간의 대기시간을 거쳐 들어갈 수 있다. 돈만 있으면 빠른 탈것을 탈 수 있어 이동시간도 많이 줄었다. 퀘스트도 예전과는 다르게 어디서 뭘 하라고 자세히 지도에 표시되어 헤매는 일이 별로 없다. 나는 하지 않지만 전장 등의 pvp 컨텐츠도 신청만 해놓으면 참여가 된다. 무작위 인던으로 모은 점수로는 레이드 세트템이나 상위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다.최근 패치로 무작위 공대가 생겨 최상위 레이드인 용의 영혼을 신청 버튼 하나로 즐길 수 있다. 소속 길드의 레벨이 높은 경우는 경험치 보너스, 수리, 전리품, 전문기술 숙련, 여행 도우미, 대규모 부활 등 혼자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혜택을 누린다. 옛날에 열심히 했던 유저라 옛날과 비교를 자꾸 하게 되는데,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우는 많이 삭막해졌다. 나는 이 현상을 한국인의 성향에서 찾고 있다. 무엇이든지 성과 위주의 사회.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고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성향이 와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하는 내가 느낀 와우(특히 던전 컨텐츠)에서 문제라고 느꼈던 점들이다.

인던은 아이템 파밍을 위한 곳이고, 모험이나 도전은 인던이 존재하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무작위에서 공략을 모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무작위 인던의 진행은 최대한 신속하고 빈틈없어야 한다. 무작위 인던에서 대화를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실수하면 바로 추방당한다. 탱커보다 딜러가 무조건 딜을 잘 해야 한다. 각 클래스에는 정형화된 아이템 셋팅과 특성, 딜 방법 등이 있으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딜이 나오지 않는다(=욕을 먹는다). 무작위 공격대에서 나온 아이템 중 자신이 굴릴 수 있는 건 다 굴려서 먹는 것이 좋다. 자신이 필요 없을지라도. 막공에서 공장은 그 수고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자잘한 사항들은 수도 없이 존재한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 적어 보았다. 던전에서는 기본적으로 빠른 아이템 파밍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고 미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블리자드가 무작위 던전과 공격대를 만든 이유는 유저에 대한 편의성 때문이지만, 라이트 유저에 대한 배려를 그 전제로 하고 있다. 현재 와우는 신규 유입이 갈수록 줄어드는(거의 없는) 상황이며, 한국에서만 봐도 신규 유저 유입을 위해 친구초대, 신규유저 무료 10일 등의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하지만 정작 신규 유저가 와우를 한다면 게임 자체의 복잡함은 차치하고서라도, 기존 유저들을 따라가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 같은 경우도 처음으로 만렙을 찍고 간 시간의 끝에서 딜이 안 나온다고 욕을 얻어먹었고, 공략을 알지 못해 묻어가는 것이 불가능해 추방당한 적도 있다. 아직도 줄구룹, 줄아만은 몇 번 가지 않아 어렵다. 이런 와중에 신규 유저가 이 곳에 녹아들어 상위 컨텐츠를 즐기기를 바란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신규 유저의 공홈 글. 신규유저의 유입을 막는 건 기존 유저들이다.

어느 날 새벽, 스톰윈드 앞에서 골수 와우저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와우를 오래 하신 분이란다. 공대장을 하고 있는데 실수 한 번 했다고 욕을 무지하게 먹었다고 한다. 신세한탄을 들어주고 옛날 이야기를 했다. 공통적인 이야기는 '요즘 와우저들 너무한다'였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는지. 게임 하나에 이렇게 편협할 수가 있는지.

이런 분위기가 싫어, 어느 정도 아이템을 맞춘 이후로는 거의 던전을 가지 않았다. 불의 땅 레이드에서 만난 드루님 부부의 부부길드에 가입해 길드 인던에만 가고, 부캐 성기사를 키웠다. 계정이 끝나 많이 키우지는 못했다. 대격변으로 퀘스트가 바뀌어 저렙 퀘스트 중에도 재밌는 것들이 많다. 가장 감명깊었던 건 불타는 평원에서 받았던 데스윙 죽빵 날리는 퀘스트. 블리자드의 센스는 아직도 진화 중이다. 

아쉬운 소리를 많이 했지만 결국 이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리니지가 조폭게임이 된 건 리니지 자체가 나쁜 게임이어서가 아니다. 와우도 마찬가지다. 와우가 싫다고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게임을 건전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게임은 스트레스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즐겁게 게임을 하고 싶다. 아이템 파밍은 그 즐거움의 일부이지, 게임 자체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던전을 가는 자체가 즐겁고, 아이템 파밍의 과정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 불의 땅에서 느껴지는 조마조마함, 박진감, 라그나로스를 처음 보면서 덜덜 떨려오던 내 몸은 아직도 와우가 최고의 게임이라고 느끼고 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이 해결 가능하다. 내가 다시 복귀한다면, 즐겁게 게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조그마한 헤딩팟을 하나 만들고 싶다. 정공도 아니고, 학원팟도 아닌, 그저 즐겁게 게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같이하고 싶은 게 유일한 소망이다. 이번 주 목요일 패치부터 실명 베틀넷 친구 간 파티 및 공격대 구성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이것으로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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