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30 작가 김훈 日常


2005년에 뵙고 이제야 다시 뵙게 됐다. 문학을 좋아했지만, 제대하고 나서는 어학에 신경쓰느라 문학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신경숙과 김훈 작가를 좋아하던 나는 김훈 작가의 강연과 신경숙 작가를 다루는 수업으로 대학 생활의 끝을 맺는다. 다시 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다.

항상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한다.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는 혼란함이 사회를 흐리고 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법전 제 1조라고 한다. 조사 하나에도 의미가 달라진다. 한국'이'가 아니라 한국'은'이다. 명료한 표현 같지만 한국어는 명료한 언어가 아니다. 미국 법전을 가져온 것이 한국의 그것인데, 미국에서는 ~이다라는 뜻으로 'Shall be'가 쓰였다. 한국은 민주주의국가를 '지향한다'라고 쓰는 것이 더 원문에 옳은 해석일 수도 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의견인가. 한국은 민주주의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인가, 한국은 민주주의국가인 것인가. 지금은 둘 다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민주주의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국가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내가 소위 말하는 '빨갱이'의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나는 아직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다. 한참 더 배우고 알아가야 한다. 

수많은 말 안에서 내가 꺼내놓는 말에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김훈 작가는 자신이 종이로 내놓는 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수한 언어 속에서 자신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말을 내놓기 때문에, 자신의 언어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평생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글쓰기란 어렵다는 뜻이리라. 책상, 종이, 연필, 지우개.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묵묵히 언어를 전개하는 인고의 시간. 건조하지만 그만큼 응축되어 있는 언어 속에 김 훈 작가의 사실과 의견이 교차한다. 

작가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책이 아니라, 망원경과 자전거라고 한다. 망원경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망원경의 쓰임새와 망원경으로 보는 세상에 대해 말하지만 나는 그것을 자전거로 받아들인다. 망원경이나 자전거나, 자신이 추구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인 것만은 같다. 김 훈 작가의 망원경 이야기는 나에게는 자전거 이야기이다. 자전거 이야기를 하셨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자전거 여행 내내 그 생각을 했었다. 모국어의 올바름, 도덕의 올바름, 사회의 올바름, 삶의 올바름. 올바른 사람이 되고 싶었고, 답이 없는 것에 해답을 내리려 했다. 올바른 삶의 태도는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결국 나는 올바른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반마초적인 나에게 있어서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다. 그래서 김 훈 작가를 존경하고, 김성근 감독을 존경한다. 강연이 끝난 후에 사인을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지만, 질문한 것은 '자전거 여행 같은 책을 쓰실 의향이 있으신가요?'라는 바보같은 말이었다. 김 훈 작가는'글쎄..'라며 흘러넘겼다. 사실 묻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경험했던 산티아고 순례길과, 김 훈 작가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소중한 기회는 날아가고, 자전거 여행 첫 장에 작가의 사인만이 남았다. 

언제쯤 다시 뵐 수 있을까. 6년만에 만난 나의 영웅은 꼿꼿한 그대로였고, 나 또한 그를 좋아하는 그대로였다.


111113 日常

누구나 바라마지않는 곳에 취직을 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내 엘리트 친구가 직장에서 굴러먹는 것을 들어보면 도무지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그 곳의 미래에 희망이 있으면 버티겠지만, 변화하지 않는 조직에 희망은 없어 벌써부터 그 친구는 빠져나올 궁리를 하고 있다. 과정 속에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여태껏 결과를 위해 참아 왔다. 결과가 끝나면 그것은 다시 과정이 된다. 과정은 다시 다른 결과를 재촉하고, 결과는 어느새 닿지 않는 곳이 되어 있다.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만을 생각하면 과정이 물거품으로 변한다.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그것이 결과로 나와야 한다. 현실감 없는 말이겠지만 현실만을 좇아 살던 결과에는 행복이 결여되어 있다. 행복이 돈 뿐이라면 내 말이 틀리겠지만.

파토가 난 스터디를 들렀다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히피처럼 보이는 외국인 부부와 애기가 내 옆에 들어왔다. 심심하던 차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네덜란드 사람으로, 8월부터 아시아를 여행하기 시작해 1년간 아시아를 둘러보는 중이란다. 지금은 한국에 온 지 2주 째. 한국이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다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내가 보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보는 한국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단기간에 한국을 속속들이 아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런 인상이라도 받았다는 데에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이 그렇게 친절했었나? 맨날 전철 탈 때 내리는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밀치면서 타는 사람들은 뭐지? 등의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그 살기 좋은 네덜란드에서 사는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 이 곳까지 왔을지 의문이었지만 원래 여행에는 목적이 없다. 왜 나는 귤을 좋아하는가, 등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그들을 떠나보냈다. 나는 그들에게 늘 하던 대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have a nice trip! 유럽에서, 떠날 때 마지막은 항상 여행 잘 하라는 인사였다. 내가 만났던 남녀노소의 수많은 여행자들. 유럽에서 느꼈던 자유와 삶의 방식은 이 곳에서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아니, 사라지지는 않고 내 몸 속 깊은 곳에서 꺼내달라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발이 묶여있는 게 늘 아쉽다. 잠시 저당잡힌 자유를 언제쯤 다시 끄집어낼 수 있을지.

일단은 늘 꾸던 꿈에서 잠시 깨어나 사람들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는 중.

어느 와우저의 철 지난 추억 이야기 게임

2004년의 가을 즈음이었나. 4명이 같이 와우를 시작했었다. 온라인 게임이라면 그저 전사가 몸빵하고 원거리 캐릭이 공격하고 사제가 힐링하는 게 전부였던 시절, 블리자드는 게임계에 무지막지한 눈보라를 일으켰다. 방대한 세계관과 그에 상응하는 규모, 퀘스트, 어그로라는 획기적인 시스템, 전장과 공격대. 나를 포함한 4명은 블리자드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IT에 혁명을 가져온 것처럼, 와우는 게임계에 혁명을 가져왔었다. 

전사 한 명은 탱킹이라는 걸 어디서 줏어들어서 쭉 방어형 트리로만 레벨을 올렸고, 드루이드 한 명은 뛰어난 게임 센스로 4명을 먹여살렸다. 사냥꾼 한 명은 집의 압박으로 밤마다 강제로 접속을 종료하기 일쑤였고, 나는 간지나는 휴먼 남자 도적이었다. 난 여태껏 나 이외의 휴먼 남자 도적을 본 적이 없다. 

어느 늦은 밤, 초반 퀘스트의 끝은 데피아즈단 소굴에서 벤 클리프를 죽이는 일이었다. 우리는 긴장하며 소굴로 들어갔다. 끝도 없이 나오는 동족들을 죽였다. 같은 휴먼 남자지만 운명은 달랐다. 변변찮은 스킬도 없었지만, 처음 시도해보는 인스턴트 던전 안의 모험은 나름대로 스릴이 있었다. 부활도 없어 유령으로 마라톤을 했고, 그만큼 시간은 지체되었다. 수많은 도적을 죽이고 물가로 나왔고, 벤 클리프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래봤자 조용히 죽을 운명이었지만. 

다 끝내고 나온 새벽, 데피아즈단 소굴 밖 언덕에는 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추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어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접속을 종료하고 돌아오는 길은 짧았지만 벤 클리프를 기습 크리로 찌르는 쾌감은 길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모험은 계속되었다. 줄파락을 가고, 마라우돈을 갔다. 만렙이 되어 리치를 죽이고 얻는 얼음 단검 하나가 그렇게 기뻤다. 천골마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하루의 모험을 마치면 아이언포지 앞마당에서 pvp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스트라솔름 남작을 잡으려고 사제 한 명을 초대해 무수히도 도전했다. 아직도 나는 남작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점점 세월이 지나고 공격대가 생기고 확장팩이 나왔다. 나는 군대를 갔고, 더이상의 모험은 없었다. 다른 온라인 게임을 가끔 할 기회가 있었는데 와우를 어설프게 베껴서 가져온 것 같아 영 고까웠다.

그 방어트리의 멍청한 전사는 와우는 게임이 아니고 예술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가끔 피씨방에 가서 와우를 접속해 보면 그 때가 그리워진다. 그깟 게임이었지만 참 재밌게 했다. 남은 건 엉망인 내 한 학기 학점과, 이런 쓰잘데기없는 추억 뿐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저 멤버가 모여 보무도 당당히 수많은 5인 인던을 차근차근 깨부수는 날이 다시 오지 않을까. 확장팩에서는 팬더가 나온다는데, 팬더 4명이 자기 갈 길 찾은 후에 즐겁게 모일 수 있기를 멋대로 소망해 본다. 뜬금없이 와우가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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